지금 꼭 알려야 할 중요한 것

꼭 알아야 할 임을 위한 행진곡에 관하여

평안의 언약 2016. 5. 16. 10:23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이 이끄는 대로 이 나라가  망했으면 좋겠는가?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공산주의 혁명 투쟁가(만토스) 글쓴이 : 만토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공산주의 혁명 투쟁가

1.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주정신이라는 종북좌파 정치모리배들

정의화 국회의장은 20155185.18 기념식에 참여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정신이다. “광주정신은 반독재투쟁을 한 민주정신이자 인권과 평화의 정신이다라고 발언하였다. 정의화의 교과서적인 발언이 얼마나 선전선동 구호에 지나지 않는지 광주정신의 허구성을 따져 보겠다.

 

19805월은 광주정신이 말하는 유신독재의 심장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최규하 과도정부는 정치 자유화와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으니, 반독재투쟁이라는 말은 터무니 없는 선동구호다. 다음으로 민주정신이자 인권과 평화의 정신을 맞는 말일까? 전국계엄 하에서 광주에서만 유독 시위대가 전라도 무기고를 털어 무장하고 살인 방화 파괴를 저질렀고 광주교도소를 습격하였으며 광주를 일시적으로 해방시켰던 폭동반란을 민주정신이자 인권과 평화의 정신이라니, 이런 주장은 김일성의 북침설보다 더욱 악질적이고 정의화 식 민주주의 정신이 무엇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2. 남민전 공산주의혁명 투쟁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출생 내막

197911월 명동YWCA 위장결혼식 사건 배후세력은 민청협과 김대중 동지 백기완 등이 주동이었다. 백기완은 그 사건으로 수감되었는데 감옥에서 인혁당재건위 사형수 8인과 남민전 동지들을 위한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이라는 시를 썼다. 이 시 속에 후에 황석영이 완결한 임을 위한 행진곡에 해당하는 부분이 들어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시 속의 깃발은 남민전 깃발이요, 공산주의 혁명을 상징하는 깃발이다. 먼저 간 투사는 남민전 동지인 인혁당재건위 사형수 8인을 뜻하는 것이고, 새날은 인민혁명이 완성되는 날이다. 실로 공산주의 혁명가로 전혀 손색이 없는 선동가다)

 

백기완의 남민전 투사를 위한 전진가는 황석영이 1982년 광주운동권 김종률이 곡을 쓰고 황석영이 백기완의 시와 기존의 운동권 여러 시집 중에서 간추려 만든 가사가 지금의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완성되었고, 이를 5.18 마지막 날 자폭 사망했던 남민전 전사 윤상원과 5.18 전에 이미 사망했던 남민전 여전사 박기순을 합장시킨 후 그 영혼결혼식에서 최초로 공식 합창하게 된다. 그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의 종북세력 및 좌파운동권 모든 행사 식장에서 함부로 목청껏 부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황석영이 마무리한 현재의 임을 위한 행진곡가사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깃발은 남민전 깃발이요, 새날은 역시 공산주의 혁명이 완성되는 날을 뜻한다)

 

백기완이 묏비나리라는 시를 쓸 때는 먼저 간 인혁당재건위 사형수 8인 남민전 전사들을 생각하면서 이겠지만, 황석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완성할 때는 5.18폭동반란에서 사망했던 남민전 전사 윤상원과 박기순을 생각하면서 썼던 것이지만, 백기완과 황석영이 생각했던 것은 공통적으로 지하공산당혁명 조직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남민전을 위한 전투행진곡이었다.

 

3. 전라도 운동권과 빨치산 후예들에 둘러 싸인 바보 안철수 좀 보소

그런데 20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안철수의 국민의 당은 이상과 같은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5.18민주화운동 기념곡으로 국가가 지정하도록 하겠다고 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국민의당 장병완 의원은 19임을 위한 행진곡5·18 민주화운동 기념곡으로 지정할 것을 재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장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번 결의안에는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와 주승용 원내대표, 박주선 최고위원, 박지원·김동철·유성엽·임내현·김관영·황주홍·권은희 의원, 더민주 강기정·박혜자 의원 등이 공동 발의했다. 장 의원은 그동안 정부는 구체적 근거 없이 국민 통합을 저해한단 이유로 임을 위한 행진곡5·18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일을 미뤄왔다정부가 반민주적·독단적 태도를 바꿔 이 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 오는 5·18 공식 행사에서 제창하도록 하기 위해 재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4. 대한민국에서 공공연히 공산주의 혁명가를 부르려는 5.18폭동반란 세력

대한민국이 지금 광주운동권과 전라도 빨치산들에게 온통 감염되어 침묵으로 항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5.18이 폭동반란으로 확정된다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주운동권과 전라도 빨치산의 기념곡으로 되든 말든 상관 할 바가 아니지만,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가를 5.18민주화운동을 위한 기념곡으로 국가가 지정하는 짓은 절대로 인정해서도 안되고, 대한민국이 공산주의 집단 혹은 김일성 왕국에게 멸망 당하는 일이 있기 전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5.18이 폭동반란으로 뒤집어 지는 날이 반드시 오고 말 것이다. 이상. 2016. 4. 22. 만토스

 

한국어위키백과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의 민중가요로서, 5·18 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 작곡되었다.[1][2] 가사의 원작자는 백기완, 작곡자는 김종률이다. 처음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표준어 규정에 따라 통상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부른다.

기원[편집]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음악인 김종률 등 광주 지역 노래패 15명이 공동으로 만든 노래극(뮤지컬) 《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삽입되었다.[1][2] 이 노래극은 1980년 5월 27일 5·18 민주화운동 중 전라남도청을 점거하다가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노래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합창으로 쓰이기 위하여 지어졌다.

곡은 김종률이 1981년 5월 광주에 있는 황석영의 자택에서 썼고, 가사는 시민사회 운동가 백기완이 YM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1980년 12월에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를 차용해 황석영이 붙였다.

감시를 피해 황석영 자택에서 이동식 카세트 녹음기를 이용해 조악하게 녹음되었던 위 노래극은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현 국립 5·18 민주 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 처음 공개됐는데, 이 노래는 이후 카세트테이프 복사본, 악보 필사본 및 구전을 통해 민주화 및 노동운동 세력 사이에 이른바 '민중가요'로써 빠르게 유포되었고,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대표곡으로서 자리 잡았다.[3]

널리 알려진 가사[편집]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군사정권 하에서 유포와 가창이 금지되었던 탓에 주로 구전의 방식으로 전해졌으므로,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가사와 가락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가사와 대한민국의 공식 5·18 민주화운동 추념식에서 기념곡으로 제창된 바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4]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원작시의 해당 부분[편집]
한편 이 가사의 원작인 백기완의 장편시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중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전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후략)
 ”

작곡자의 2008년판 가사[편집]
이 노래의 작곡자인 김종률은 5·18 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그에 쓰일 곡들을 모아 2008년 5월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이름의 음반을 발표한 바 있다. 그 음반에 수록된 이 노래의 가사는 널리 불리는 것과 약간 다른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이는 구전을 거치며 다소 변형된 가사를 원형대로 되돌리고, 백기완의 원작 시구를 최대한 그대로 보존하여 원작 시와 가사를 일치시키기 위한 것이다. 노래는 가수 서영은이 불렀다.[5]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 소리치는 끝 없는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行進曲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요약 테이블
시대
현대/현대 
저작자
백기완 원작, 황석영 작사, 김종률 작곡 
창작/발표시기
1982 
성격
민중가요 
유형
작품 

분야
예술·체육/대중음악 
요약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노래이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민중가요.
[내용]
1982년 5월, 백기완의 미발표 장시 「묏비나리」(1980)의 한 부분을 차용하여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짓고, 전남대 출신으로 대학가요제에서 수상한 바 있는 김종률이 곡을 지었다. 이 노래는 1970년대 말부터 광주의 극회 광대에서 활동하던 문화운동 관련자들이 모여 지하방송 ‘자유광주의 소리’를 창설하기로 하고 첫 작품으로 만든 음악극 「넋풀이 굿(빛의 결혼식)」에 포함되어 있다. 「넋풀이 굿」은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전사한 두 남녀의 영혼결혼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잇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고인이 된 두 남녀가 저승으로 가면서 ‘산 자’에게 남기는 마지막 노래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등의 가사는 온 몸을 바쳤던 치열한 투쟁과 엄청난 죽음으로 귀결된 비극적 패배의 절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는 이러한 비극적 죽음과 절망을 딛고 나아가는 비장한 의지와 용기, 결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가사 내용은, 대중적이면서도 비장한 4/4박자 단조의 행진곡 음악과 조응한다.

음악극 「넋풀이 굿」은 가정용 카세트녹음기로 녹음되어 서울로 옮겨졌고, 여기에 수록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서울과 광주에서 급격히 빠른 속도로 구전되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1970년대의 구호적 행진곡의 유행을 종식시키고, 비극성 등의 서정성을 풍부하게 담은 행진곡의 시대로의 이행을 확고히 했다. 이 작품이 보여준 비장한 단조 행진곡은, 이후 민중가요의 가장 대표적인 양식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현황]
1980년대 말부터 이 노래는 민주화운동 집회를 시작할 때 민주화운동의 열사들에게 바치는 묵념과 함께 불리는 노래가 될 정도로, 한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5월 18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이 노래는 기념식장에서 공식적으로 제창되었으나, 2010년과 2013년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빼려다 유족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사건이 발생했고, 2013년 6월 국회에서 이 노래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공식 추모곡으로 지정하자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